아이티에서 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평소의 생활에 묻혀 지나치고 있을 때
굿네이버스(NGO: 비정부단체)가 의료지원에 대한 협조를 우리병원에 요청해 온 걸 알게 되어 아무 준비 없이
신청하게 되었다.
굿네이버스에서 의료용품에 대한 준비가 미흡하다는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약국(최승미 약사)과 응급실(김영신
과장)에 부탁해서 환자를 처치할 수 있는 보따리를 싸서 박두용 간호사, 굿네이버스의 긴급구호팀과 강제욱
사진작가와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언론에서 비쳐지는 아이티에서의 폭동과 혼란 이야기는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팀에서 제일 연장자인 관계로
억지로(?)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했다.
도쿄, 뉴욕을 거쳐 굿네이버스 구호팀의 베이스 캠프가 있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수도 산토도밍고에 도착하였다.
공항청사 밖으로 나가자 겨울인데도 뜨거운 열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캠프에 도착하니 새벽 2시경. 긴급구호팀과 자원봉사자(현지 선교사, 미국에서 온 한인 목사 부녀, 영화감독 등)가
아이티로 구호식량을 중간에 약탈당하지 않고 아이티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작전을 세우고 있었다.
무엇보다 팀원들의 안전이 보장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다.
다행히 현장에서 미군의 도움과 팀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배분이 잘되었고 다시 베이스 캠프가 차려진아이티로
팀원들이 무사히 돌아왔다.
산토 도밍고에서 삼일동안 더 머무르면서 현지상황을 체크하고 진료물품을 최대한 확보하였다.
어느 정도 준비가되어 버스를 빌려 구입한 물품을 싣고새벽에 산토 도밍고를 떠나 아이티로발했다.
8시간 정도 걸려 아이티의 수도 포트프랭스에 도착하여 구호팀은 진료가 가능한 지역을 물색하였고 난 미국에서 온 의사들
그리고 아이티 현지 선교사들께 현지사정, 환자유형, 병원사정 등 에 대한 정보를 전해 듣고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자는
의견을 뒤로 하고 우리는 빈민촌에서 진료하기로 결정하였다.
포트프랭스의 첫 느낌은 솔직히 지옥(?)이었다.
건물은 거의 대부분 부서지고 아이티인들은 외국인에게 먹을 것을 달라하고 구호물품이 태부족해 낡은 천막속에서 일가족이 하루를 때우는 지옥(?). 그러나 그건 내 선입견임을 얼마 지나지않아서 알게 되었다.
여러 언론에서 비쳐지는 아이티는 겉모습에 불과하였다.
언론에서는 시장은 사라지고 약탈만 일삼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내 눈으로 확인한 아이티 사람들은
그렇지않았다.
시장, 행상, 시내버스, 택시 어느나라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 이곳 아이티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다.
표정은 어둡지만 미소를 보이고 손을 흔들면 답례를 하였고 어린애들은 여전히 웃고 있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드디어 우리는 아이티에 입국한 다음날 천막을 치고 진료를 시작하였다.
굿네이버스의 팀장은 팀원의 안전이 걱정이 되어 신경이 곤두세워져 있지만 박두용 간호사와 나는 접수팀, 진료팀,
약제팀으로 팀원을 재조직해서 환자를 보기시작했다.
지진이 발생한 지는 벌써 2주째가 되지만 빈민촌뿐만 아니라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너무나 많았다.
지진때 상처가 났는데 간단한 치료를 받지못해 염증이 심해진 환자, 열상이 있는데 봉합을 하지 못해 그냥 걸어다니는
소년, 생후 2,3개월인데 열이 심하고 탈수 증상이 있는 영아, 지진과 상관없이 갖고 있던 만성질환등등..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10살 정도 소년인데 지진때 머리를 다쳐 열상이 심했는데 2주 동안 아무 치료도 못받아서
피부가 벌어진 채로 다니는 아이였다.
봉합을 할 수가 없어서 수액으로 상처소독을 하는데 그속에 숨어있던 모래들이 계속 나왔다.
이 모래를 가지고 2주 동안 계속 지내왔던 건데..
그 아이의 눈빛이 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꼭 봉합해 주고 싶었는데.
그냥 적응해서 살아가는 어른들을 보면서 이 아이도 여기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시스템의 부재가 또 가슴을
아프게 한다.
난 잠깐 왔다가 돌아가 아이티에 갔다왔다는 훈장이 아니라 우리가 50년 전에 마찬가지 상황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
병원을 짓고 헌신한 고마운 분들이 있었던것처럼 우리 대학과 병원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어느 곳에 병원을 짓는 그날을
그려 본다.
솔직히 내가 환자를 봤다고 하지만 배우고 얻어온 것이 더 많다.
언제나 위험한 지역에서 봉사하는 수 많은 자원 봉사자들과 그들의 솔선수범, 체계화된 해외 NGO단체들,
대비되는 우리의 현실에서의 삶, 그래도 가장 뜨거웠던 건 그들의 따뜻한 정신과 마음이었다.
기회를 주신 대학, 병원, 응급의학교실, 임걸 목사님, 박광화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마지막으로 우리 인생에 거룩한
부담(?)을 주고 간 인기배우로 활동하다 은퇴하여 아프리카 난민 구호가로 나머지 삶을 마감한 오드리 햅번의 말로
글을 맺을까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있음을…."
'알림방 > 병원 소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조합 홈페이지 개편 (0) | 2010.04.09 |
---|---|
제32차 신협 총회 개최 (0) | 2010.04.09 |
해외의료선교 보고서 통합본 발행 (0) | 2010.04.09 |
원주기독병원 최 병호교수 의학서 발간 (0) | 2010.03.22 |
기독병원 "콩팥의 날"행사 (0) | 2010.03.10 |